영상
성경 본문
마태복음 6:9-13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10.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11.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설교 요약
1. 들어가는 말: 용서는 왜 고통스러운 화두인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용서라는 주제에 대해 깊이 있게 나누고자 합니다. 용서는 우리에게 가장 어렵고 힘든 일입니다. 과거 일본의 ‘이지메’ 사건이나 학교 폭력 사례처럼 , 우리가 겪은 상처와 고통은 용서라는 단어를 매정하고 불가능하게 느끼게 만듭니다. 세상은 용서가 피해자에게 주어진 '권리'이며, 용서하지 않을 권리도 있다고 말합니다. 이는 용서하지 못하는 우리의 마음을 정당화하는 듯 보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주기도문에서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이는 우리가 먼저 용서했으니 하나님도 용서해 달라는 조건부 거래가 아닙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죄는 용서받고 싶어 하면서도, 이웃의 상처에 대해서는 절대 용서할 수 없다고 외치는 ‘영적인 분열증’에 빠져 있습니다. 우리는 이 불편한 진실을 직면하고, 성경이 말하는 용서의 본질을 깨달아야 합니다.
2. 용서,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 하나님의 은혜
우리는 용서를 감정적 해소나 도덕적 선택의 문제로 생각하지만 , 성경은 용서를 ‘빚’의 문제로 다룹니다. 누가복음은 죄(hamartias)를 '빚(ḥôbā)'으로 번역하며 우리의 죄가 하나님께 갚을 수 없는 '영적인 부채'임을 강조합니다.
이 개념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일만 달란트 빚진 자의 비유입니다 (마태복음 18:23-35). 한 사람이 평생을 벌어도 갚을 수 없는 막대한 빚을 진 종은 , 주인의 압도적인 은혜와 자비로 그 빚을 전액 탕감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백 데나리온이라는 작은 빚을 진 동료를 용서하지 못하고 옥에 가두었습니다. 이 비유는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용서가 바로 압도적인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긍휼과 자비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3. 십자가의 신학: 용서의 근거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거룩과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죄를 그냥 묵과하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속성을 포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구약의 속죄 개념인 '카파르(kāphar)'는 죄를 임시적으로 가리는 행위를 의미했지만, 이는 완전한 해결책이 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죄에 대한 심판을 요구하고, 사랑은 죄인에게 자비를 요구하는 딜레마를 해결한 유일한 길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을 제물로 내어주심으로써 사랑과 공의를 모두 만족시키는 완벽한 용서의 통로를 여셨습니다. 십자가는 단지 개인의 죄를 덮는 행위를 넘어,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는 '구원론적 행위'입니다. 우리가 받은 용서가 얼마나 값비싼 것인지 깨달을 때, 우리의 용서는 단순한 도덕적 의무를 넘어 자연스러운 응답이 됩니다.
노예무역 선장에서 목사로 변하여 'Amazing Grace'를 작사한 존 뉴턴의 삶은 그가 받은 용서의 은혜가 얼마나 놀라운 것이었는지 보여줍니다. 또한 두 아들을 총살한 청년을 아들로 입양한 손양원 목사님의 삶은 진정 하나님의 은혜에 압도된 자가 어떻게 용서의 기적을 행하는지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입니다.
4. 용서는 인간의 노력인가, 은혜의 능력인가?
용서는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명령입니다. 베드로가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인간의 힘으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진정한 용서는 '받은 은혜가 충만할 때', 그 은혜가 넘쳐 '능력'이 될 때 비로소 가능합니다. 용서의 주체는 우리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나는 너를 통해 저 형제, 자매를 용서하고 싶다!"고 말씀하십니다.
용서는 가해자를 위한 희생이 아닙니다. 성경과 심리학은 용서가 궁극적으로 '용서하는 자 자신'을 위한 행위라고 말합니다. 용서하지 않는 마음은 분노와 원한이라는 칼과 같아서, 나 자신을 상처 입히는 행위입니다. 남아공의 데스몬드 투투 주교는 "용서는 이기심의 최선의 형태"라고 말했습니다. 용서는 과거의 상처가 남은 삶을 지배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며, 내가 삶의 주체가 되는 용기 있는 행위입니다.
결론: 은혜가 충만할 때 용서의 기적이 일어난다
우리가 하나님의 압도적인 사랑으로 죄 사함을 받았다면, 그 은혜는 반드시 우리의 삶을 통해 흘러가야 합니다. 용서는 희생이 아니라, 용서받은 자의 마음에 넘치는 은혜가 흘러나가는 기적입니다. 여러분의 힘과 의지로 용서하려 하지 마십시오. 반드시 실패할 것입니다. 오직 주님이 부어주신 압도적인 은혜가 여러분의 상처와 아픔을 덮고, 묶인 마음을 풀어놓게 하십시오. 용서는 우리의 몫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통해 이루시려는 기적의 역사입니다.
이 은혜를 힘입어 용서의 통로가 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소그룹 나눔 질문
주제: 『 용서, 은혜가 가득한 자에게 허락된 기적 』 (마 6:9-13)
1. 함께 나누기
•
나에게 용서란 어떤 의미인가요? 가장 용서하기 힘들었던 경험은 무엇이었나요?
•
설교에서 나온 존 뉴턴이나 손양원 목사님의 삶을 통해 용서의 기적을 경험한 이들의 이야기가 나에게 어떤 도전과 울림을 주나요?
•
내가 받은 은혜가 얼마나 놀랍고 값비싼 것인지 진정으로 깨달을 때, 용서는 어떻게 변화될 수 있을까요?
•
'당신의 힘과 의지로 용서하려 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반드시 실패할 것입니다.'라는 설교의 메시지처럼 , 나의 힘이 아닌하나님의 은혜로 용서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요?
•
용서가 궁극적으로 '용서하는 자 자신'을 위한 행위이며 '최고의 이기심'이라는 말의 의미를 함께 나누고, 용서가 나에게 줄 수 있는 자유와 회복에 대해 나눠봅시다.
2.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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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의 통로가 되게 하소서: 우리가 받은 일만 달란트의 은혜를 기억하며,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을 주님께 온전히 올려드립니다. 우리의 힘이 아닌 성령의 능력으로 용서의 기적을 경험하게 하시고, 그 은혜가 흘러 넘치는 삶을 살아가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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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통치를 이루게 하소서: 우리의 용서를 통해 하나님께서 이 땅에 당신의 통치를 이루시고, 관계가 회복되는 역사를 허락해 달라고 함께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