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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로마서 6:1-4
1.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2.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설교 요약
1. 들어가는 말: 은혜의 통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주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는 은혜의 방편이 되는지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또 다른 은혜의 통로, 바로 '성례(Sacraments)'에 대해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92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성례가 무엇인가?"
답: 성례는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거룩한 예식인데, 이 예식에서 그리스도와 새 언약의 유익이 눈에 보이는 표로써 표시되고 인쳐져서 신자들에게 적용된다.
그렇습니다. 성례는 단순히 우리가 행하는 의식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은혜를 '눈에 보이는 표'로써 확인시켜 주시는 도장(Seal)과도 같습니다. 개신교 교회는 오직 예수님께서 직접 제정하신 두 가지, 즉 세례(Baptism)와 성찬(The Lord's Supper)만을 성례로 인정합니다. 오늘은 그 중 첫 번째인 '세례'에 대하여 깊이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2. 서론: 세례의 방식과 의미의 다양성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베드로전서 3:21)
기독교 역사 속에서 세례는 교파마다 조금씩 다른 강조점을 가져왔습니다. 우리 장로교회는 세례의 언약적 의미와 공동체적 의미를 강조합니다. 이는 구약의 할례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표지였듯, 세례가 새 언약 백성이 되는 거룩한 표식이라는 것입니다.
반면 침례교 형제들은 죄 씻음과 개인의 고백, 그리고 침례(물에 완전히 잠기는 방식) 자체를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물속에 완전히 들어갔다 나옴으로써 죽음과 부활을 몸으로 생생하게 체험하는 것을 강조하지요. 그러나 형식이 물을 뿌리는 것이든 잠기는 것이든, 그 본질은 동일합니다.
3. 본론 1: 세례의 본질 - 죽음과 생명
3.1 죄에 대하여 죽다
오늘 본문 로마서 6장 3절을 보십시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바울은 묻습니다. 세례의 첫 번째 본질은 '씻음'과 '죽음'입니다. 물은 더러운 것을 씻어냅니다. 그러나 여러분, 오해하지 마십시오. 물 자체가 우리의 영혼을 씻는 마술적인 힘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전서 3장 21절이 말하듯,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91문이 가르치듯, 성례의 효력은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의 역사와 그리스도의 보혈에 있습니다. 물은 예표입니다.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입니다. 세례를 받을 때, 우리는 "나는 내 죄로 인해 죽어야 마땅한 존재입니다"라고 고백하며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에 연합하는 것입니다.
3.2 의에 대하여 살다
세례는 죽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본문 4절은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고 선포합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94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세례가 무엇인가?"
답: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씻는 것인데, 이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접붙임을 받는 것과, 은혜 언약의 혜택에 참여하는 것과, 주님의 것이 되기로 약속하는 것을 표시하고 인치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습니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받습니다. 이것은 소유권의 이전(Transfer of Ownership)을 의미합니다. 이제 세례 받은 자는 삼위일체 하나님께 속한 자가 되었다는 선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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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주인의 뜻대로 사는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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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의 할례가 신약의 세례로, 구약의 희생제사가 신약의 성찬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그리스도로 옷 입은 자'(갈 3:27)입니다. 군인이 군복을 입으면 군인답게 행동해야 하듯, 신자는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4. 본론 2: 누구에게 베풀어야 하는가? (믿음과 열매)
"그러면 아무나 세례를 받을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소요리문답 95문은 "보이는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세례를 베풀지 못한다"고 명시합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그에 대한 복종을 고백하는 자라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가 세례 교육을 하고, 학습과 문답의 과정을 두는 이유입니다. 단순히 지적인 동의가 아닙니다. 그 영혼 안에 회심의 증거가 있는지, 삶의 열매가 맺히기 시작했는지 공동체가 확인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세례는 개인적인 신앙 고백인 동시에, 공적인 공동체 입회식이기 때문입니다.
형식(물을 많이 쓰느냐 적게 쓰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본질(순종과 믿음)입니다. 회개 없는 세례는 단지 목욕에 불과합니다. 믿음 없는 의식은 공허한 퍼포먼스일 뿐입니다.
5. 본론 3: 유아세례의 정당성
많은 분들이 묻습니다. "아기가 무엇을 안다고 세례를 줍니까?" 하지만 소요리문답 95문은 "유형 교회의 회원이 된 신자의 유아들도 세례를 받을 것이다"라고 가르칩니다.
이것은 '개인'의 구원을 넘어선 '언약'의 관점입니다. 구약에서 아브라함의 자손은 난 지 8일 만에 할례를 받았습니다. 그 아이가 믿음이 있어서가 아니라, 언약 백성의 가정에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신약에서도 이 원리는 유효합니다.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고...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자녀도 깨끗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이제 거룩하니라"(고전 7:14)
사도행전 16장 31절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빌립보 간수의 집에서 온 가족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유아세례는 부모의 신앙 고백 위에, 하나님께서 이 아이를 언약의 백성으로, 기도의 자녀로 키우시겠다는 하나님의 선취적인(Prevenient) 은혜의 표시입니다. 부모는 이 아이가 자라 입교할 때까지 말씀을 먹일 책임이 있습니다.
결론: 거룩한 신분의 확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세례를 받으셨습니까? 세례는 과거의 추억이 아닙니다. 그것은 매일의 현실이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미 장례식을 치른 사람들입니다. 죄에 대하여 죽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이미 다시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의에 대하여 산 자들입니다.
우리의 이마에 물이 닿던 그 순간을 기억합시다. 그것은 삼위 하나님께서 "너는 내 것이다"라고 도장을 찍으신 사건입니다. 때로는 죄에 넘어지고, 세상의 유혹에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여러분의 세례를 기억하십시오.
소그룹 나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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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의 기억: 자신이 세례(또는 유아세례)를 받은 날이 언제였는지, 혹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세례식이 특별하게 기억되는 순간이 있다면 함께 나눠봅시다. (세례의 의미를 되새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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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에 대하여 죽은 자'로 산다는 것은 우리의 일상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이며, 어떤 영역에서 죽기 가장 어렵습니까? (예: 분노, 염려, 미움, 탐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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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과 유아세례 (선택 질문): 유아세례를 받은 분이 있다면, 부모의 믿음으로 언약 공동체 안에 속하게 된 것이 현재 자신의 신앙 여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나눠봅시다. (유아세례를 받지 않은 분은, '언약의 공동체' 개념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게 되었는지 나눠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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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의 변화: 세례를 '그리스도의 옷을 입는 것'으로 비유했습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께 속한 자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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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옷을 입은 사람으로서, 세상의 가치관이나 유혹 앞에서 나의 말과 행동이 '옷에 걸맞게' 변화되어야 한다고 느꼈던 경험이 있다면 나눠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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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한 주 동안 죄에 대하여는 죽고,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있는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살 수 있도록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합시다.





